[인간 실격]을 읽고

잡담 2019. 10. 1. 00:08 |

 혐오스럽다. 책을 읽고, 아니 책을 읽으며 내내 이 생각에 휩싸였다.

 

 토요일, 아무것도 하기 싫고 하지 않는 오늘 갑자기 '인간 실격'이라는 책의 제목이 떠올랐다. 평소 '데스노트에 이름을 쓰면 살인죄일까?'와 같은 뭔가 궁금증을 자극하는 제목에 이목이 끌렸기에 기억을 했었는데 앉아서 넋놓다가 갑자기 생각났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이 책을 가지고 있다고 했고 대충 씻고 뛰어 나가 책을 빌릴정도로 책에 대해 기대했고 흥분했었다. 보통 책을 읽기 전 책 날개에 적혀있는 저자 소개를 즐겨읽는 편인데 저자 소개를 읽자마자 기대감을 충족시키질 못할 책이라는 건 직감했다.

 

 저자 자체가 5번의 자살 시도라는 화려하다면 화려할 수 있는 소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분명 희망적이거나 동기부여할만한 소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인간 '실격'이라는 제목에서 긍정적인 분위기를 원한건 아니지만 책의 내용은 예상에 크게 다르지 않았고 크게 달랐다. 책을 읽으며 강하게 든 생각은 '자서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굳이 책의 내용이 소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5일간 나가지 않았던 산책도 책을 읽던 도중 도망치듯이 나갔었다. 계속 읽으면 미쳐버릴것만 같아서. 초반부분 어린시절을 묘사할 때, 자신은 다른사람과 달랐고 진정으로 즐겁지 않았지만 '익살스러운 척' 연기를 했고 다른사람을 웃기고 속이는데 탁월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크게 모멸감을 느꼈다. 애초에 어린아이가 다른 사람을 저런 의식을 가지고 속인다는게 상상도 안 갔거니와 타인을 업신여기는 것같아서 싫었다. 책의 뒷 표지에는 뉴욕 타임스의 [인간 실격]에 대한 한줄평이 적혀져 있다.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데 있어 다자이 오사무보다 뛰어난 작가는 드물다." 어쩌면 나는 인간의 나약함을 바라보는 것에 있어서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요즘 절망보단 희망적인 부분을 원하는 건 사실이다. 사실 희망을 한다기 보단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생긴 것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 실격'을 명작이라 말하지만 반은 동의하고 반은 동의하지 않는다. 우선 명작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은 부분은 책에 기대를 하고 실망을 했지만 실망한 상태에서 봐도 집중력 있게 잘 읽혔다.

 

 세상에 대한 비관적인 부분을 다루고 여과없이 서술함에도 불구하고 텍스트 자체는 거부감 없이 들어왔다. 추천하지 않는 이유는 비슷한데 거부감 없이 들어오는 점이 이 책의 나오는 주인공인 '요조'의 삶에 공감하게 된다.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고 저런 삶을 희망하지도 않는데도 이 책의 주인공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어쩌면 정말 좋은 특징일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이 책에선 아니라고 생각한다.

 

 글을 쓰다보니 '인간 실격'과 비슷한 느낌이 든 작품이 있다. 영화 '기생충'과 느낌이 비슷한데, 다 읽고나서 찝찝한 점이 아니, 가장 비참한 사람의 삶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 것 같다. 다시는 읽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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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헤르만 헤세의 서술 방식을 좋아했기에 언젠간 데미안을 꼭 읽어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결코 놀 수 있는 시간도, 한가한 시간도 아니었지만 가장 빠른 대학 발표도 한 달 넘게 남았기에 동네 도서관에 들러 데미안을 빌리게 되었다. 데미안 표지의 한 소년이 눈에 띄었다. 서양 초등학교 어딘가엔 존재할 법한 그런 소년의 모습이 나를 노려보지도, 부드럽게 보지도 않았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눈빛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었다.

 

 데미안을 읽기 전, 헤르만 헤세가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작품을 낸 것을 알았기에 초반 내용적인 측면에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없었다. 하지만 뒤로 갈 수록 종교적인 내용이 많이 나왔기에 아무런 종교도 없는 나에겐 성경 내용을 기반으로 한 작품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데미안 책의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박힌 것은 에밀 싱클레어가 데미안과 친해지기 전, 그를 대하는 태도이다. 가까워지고 싶지만, 두려운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서술 방식에서 정체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나 역시 그런 기분을 느껴보았기에 작중 에밀 싱클레어의 감정에 가장 깊게 이입한 부분이다. 혹자는 헤르만 헤세의 작품에서 묻어나오는 어둡고 퀴퀴한 느낌을 싫어한다. 나 역시도 이런 느낌을 반기진 않지만 그냥 어둡고 우울한 느낌이 아닌 헤르만 헤세의 작품에선 납득 할 수 있는 부정적인 느낌이 나온다. 부정적인 느낌보단 어두운 느낌이 인위적이지 않은 느낌이다.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어두운 느낌은 읽은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기보단 작에 더 집중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라고 한다.』 데미안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기억에 남는 구절일 것이다.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이 길게 나온 구절은 유일했기에 나도 기억에 남긴 한다. 하지만 가장 인상깊은 구절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성경의 내용을 잘 몰라서 그런 것인지, 혹은 작품에서 내가 놓친 내용이 있는 것인지 처음 위 구절을 읽을 때부터 아무런 느낌조차 느낄 수 없었다.

 

 데미안의 엔딩부분은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어이가 없다. 열린 결말이라고 하기에도 찝찝하고, 확실하게 결말을 단언했다기에도 문제가 있다. 왜 데미안은 다친 나를 두고 그냥 떠났는지, 에바 부인은 어떻게 되었는지, 에밀 싱클레어의 부모님은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게 갑작스럽게 결말이 났다고 생각한다.

 

 데미안을 총평한다면 어느점에서 명작인지는 알 것 같으나 도대체 어느 점인지가 모호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성경의 내용을 몰라서인지 혹은 집중하지 못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후에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긴 한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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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ack1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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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S설정을 바꿔 인터넷 속도를 올릴 수 있다는 말이 퍼지고 있습니다.


기존의 구글이 지원하는 8.8.8.8 DNS를 이용하지 않고 CloudFlare가 호스팅하는 1.1.1.1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 기존의 DNS들과 CloudFlare가 지원하는 1.1.1.1의 반응속도 비교


 밀리세컨드 단위로 변화하여 솔직히 사용하며 느끼긴 힘듭니다. 허나 향상이 있다면 적용시켜보고 싶은게 사람마음이죠.


적용 방법은 간단합니다




윈도우 10 기준 하단 작업표시줄에 있는 네트워크 표시를 눌러 네크워크 및 인터넷 설정을 엽니다. ( 위 사진 참고 )


 

파란색으로 표시된 어댑터 옵션 변경을 누릅니다.



 바꾸고 싶은 이더넷을 우클릭한 후 속성으로 들어갑니다. 저 같은 경우는 VMWARE가 깔려있어 2개가 추가로 뜨나 일반 사용자분들은

Intel Ethernet Connection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스크롤을 내려 인터넷 프로토콜 버전 4(TCP/IPv4)와 인터넷 프로토콜 버전 6(TCP/IPv6)를 찾습니다. 이후 속성을 누릅니다.



IPv4의 설정은 왼쪽을, IPv6의 설정은 오른쪽 사진을 참고하여 그대로 옮겨 적으시면 됩니다.


IPv4 기본 설정 DNS 서버 : 1.1.1.1

IPv4 보조 DNS 서버 : 1.0.0.1


IPv6 기본 설정 DNS 서버 : 2606:4700:4700::1111

IPv6 보조 DNS 서버 : 2606:4700:4700::1001


이후 확인을 클릭하고 닫은 후 브라우저를 다시 시작하면 적용이 완료되어 있습니다.


웹서핑을 할 때 눈에 확 띄는 변화가 생겼다는 분과 그렇지 않은 분으로 나뉘니 마음에 안드신다면 기존 설정으로 다시 돌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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